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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자의 리뷰/장소

[전시회]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을 보고 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40년에 대한 생각)

by Toby_Choi 2023.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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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간만에 서울에 전시회를 보러 다녀왔다.

그것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하는 [피카소와20세기 거장들]

마이아트 뮤지엄은 삼성역 바로 앞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고

좋은 전시도 많이 한다.

가봐야지 하다가 사정상 못 간 전시회가 많지만

이번에는 과감하게 연차를 내고 다녀왔다.

서울 나들이는 나에게 즐거움과 영감, 삶에 대한 의지를 선물하지만

내 돈을 털어간다...


피카소와20세기 거장들
 
 
 

나는 미술알못이기 때문에 도슨트 투어를 예약했다.

심성아 도슨트 분께서 잘 설명해 주셔서 지식적으로도 유익했고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매우 쾌적하고 조용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작품 하나하나 내가 느낀 점을 적어보려고 사진을 좀 찍어봤는데 개오바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생략하고

사진만 조금 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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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전시의 작품은 모두 원화라고 합니다. 꼭 보러가세요
 
 

사실 내 생각엔 어떤 작품이 있고

사진을 올리고 보고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직접 가서 실제를 보면 느낌이 아예 다르니까.

 


 

그리고 포스팅 제목이 길어진 것과 관계하여

도대체 저 전시가 이스라엘 백성과 무슨 상관이 있나 생각할 텐데

사실 전혀 상관없다.

전시랑은 전혀 상관없지만

오늘 전시를 내가 봤기 때문에 나와 맞닿아서는 관계가 있다.

오늘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 탈무드를 읽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간 헤매게 하신 것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내가 이해한 대로 고쳐 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몸만 탈출했을 뿐 정신적으로는 노예였다.

몇 세기에 걸쳐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집트인들이 시키는 대로 노예생활을 했다.

자유 시간이란 개념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고

십계명이 주어졌다.

처음에는 처음 생긴 자유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내일의 시간을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모세라는 지도자가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광야에서의 삶을 통해 배워갔다.

오늘은 어떤 일들을 했는지, 좋은 일을 했는지,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하루의 마지막에는 오늘은 과연 좋은 날이었는지를 생각했다.

그다음 날에는 오늘은 과연 좋은 날의 이틀째였는가를 생각했다.

그렇게 40년간 시간을 계획하고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시간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명을

정말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을 관람하며 탈무드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고

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은 무언가의 형태를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단순 기록을 넘어서 표현으로 발전하여 구상미술이 되었고

어떻게 대상을 표현할까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발전시켰으며

조르주 브라크가 입체파를 창시하고 그 위대한 피카소가 구상을 종결시켜버렸다.

그리고는 칸딘스키를 통해 추상미술이 시작되었다.

미술계는 추상미술을 통해 형태와 색채의 정형에서 자유로워졌으나

대중들은 그것을 자유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전까지는 인상파니 야수파니 이상하기는 해도 뭘 그렸는지 대상은 대충 알았는데

입체파에서부터 좀 이상한가 싶다가 갑자기 네 살 먹은 우리 조카도 그릴만한걸 가지고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미술이 뭔지도 헷갈리게 되는 와중에

미술계는 Popular Art 소위 팝아트로 알려준다.

구상이고 추상이고 작가의 표현과 의지가 예술이 되는 것이다.

작가가 세제 박스에 시대정신을 담으면 그것도 예술이고(앤디워홀)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고 조수들이 만들어도

작가는 구상만 하고 그냥 광업소에 맡겨서 조형물을 찍어와도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중은 알게 된다.

우리의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가 예술이구나.

바로 그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이 탄생한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전에도 있었음..ㅎㅎㅎ)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가나안 땅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광야에서의 40년 중 만나게 된 것 중 하나인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인지.

그리고 사실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변화하고

그 변화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전시회 엔딩크레딧
 

 

사실 지금 쓰면서 생각해 보니

그게 반복되고 비슷하고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이고, 어쩌다가 논리가 맞더라도 뭐 어쩌라고 싶은 내용인데

사실 내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모세가 선택받은 이유가 아닐까?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라고 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들어서 쓰셨는데

왜냐면 모세는 이미 그것을 위해 예비된 인력(?)이었기 때문이다.

모세에게는 없고 다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있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노예정신"이다.(모세는 공주의 아들로 자랐다)

하나님이 모세를 나일강에 띄우고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한 이유가

노예 정신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로 세우기 위한 큰 그림이었나 보다.


하나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라면

(https://ihere.tistory.com/76 이전 포스팅 참조)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